손양원 사랑과 용서의 발자취 ‘함안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서 찾다

2011년 5월 순교자 기념교회로 지정된 칠원교회는 1906년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에 소속된 교회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모 교회이다. 손양원 목사는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고,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으며, 굳건한 신앙의 기초를 다졌다. 손 목사 자녀인 동인 동신 동희도 이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주일학교를 다녔다. 손 목사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초대 집사와 초대 장로로 섬기면서 신앙의 귀감을 보였고,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부엌 도구만 남기고 논 다섯 마지기를 칠원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려 칠원교회당이 지어졌다. 1919년 칠원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년 동안 옥고를 치렀으며, 후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칠원교회는 손양원 목사 집안의 모태이다. 칠원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2007년부터 손양원 목사의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위해 애써오다가, 인고의 시간 끝인 2015년 10월 20일 수고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당도 손양원 목사 기념관 입구로 이전하여 2015년 11월에 새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손양원 목사 기념관의 지킴이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칠원교회를 중심으로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 이야기를 따라 가본다.

#방치되어 있었던 손양원 목사 생가터

2005년 칠원교회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담임하고 있는 최경진 목사를 만나 손양원 목사 생가복원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유아 시절 신앙생활이 궁금해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다. 목사, 장로, 전도사 등 다양한 연구자들의 발길들이 이어졌다. 이곳을 찾아오는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역할은 칠원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최경진 목사의 사역에 한 부분이 되었다.

지금은 손양원 목사의 생가를 원형대로 재연했지만, 당시 생가터는 양옥집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연자맷돌이 있는 자리에는 개가 사육되고 있었다. 생가를 안내하는 최 목사는 탐방객들을 향해 개들이 사정없이 짖어대는 통에 자괴감이 들었고, 그 부끄러움은 최 목사와 당회원들의 몫이 되었다. 이 건물의 소유주는 부산에 있는 한 재건교회가 세를 주고 있었다.

# 손양원 목사 생가복원 비전

2006년 1월 1일 주일 최경진 목사는 설교를 통해 ‘손양원 목사 생가복원’ 비전을 제시하였다. 교회의 영적인 유산을 이어갈 책임감을 전 교우들이 공감하며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교우들과 애양원을 방문하고, 손동희 권사를 초청하여 간증 집회도 가지며 시대적 사명감을 공유하였으나 막상 구체화에 대한 시행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칠원교회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최 목사는 어떻게 첫 단추를 끼울지 고민하다가 고신대학교 이상규 교수에게 자문하였고, 구체화할 적임자 C씨를 추천받았다. 이후 일이 진행되는 동안 C씨를 통한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고, 이후 수습을 위해 이상규 교수를 만나 논의하다가 소개받은 박시영 목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생가복원 기념관 건립 본부장)를 통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손양원 목사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

박시영 목사를 중심으로 추진력을 얻었던 어간에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도 이만열 교수(서울중앙교회, 전 국사편찬위원장),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정주채 목사(향상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기념사업회 산하 사업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다. 칠원교회는 4억 원을 들여 2008년 생가복원 및 기념관 건립을 위해 생가터(4,628㎡)를 매입하고, 이자를 내느라 힘들었는데 기념사업회가 3억 원을 지원해 빚을 청산했으며, 기념사업회는 칠원교회의 손양원 목사 생가터 4628㎡에다 3966.94㎡를 추가로 확보하였다. 당시 함안군과 경남성시화운동본부, 경상남도, 국회의원, 정부 등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는 2010년 1월 17일 설립되었고, 2011년 2월 24일 국가보훈처로부터 사단법인 인가(No2011-101호)를 받았다. 2013년 4월 생가복원 기념관 건립본부(본부장 박시영,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가 조직되었고, 건립본부의 주도로 공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1년 6개월 만에 준공하게 되었다.

건물 건축에 보훈처와 함안군청의 지원을 받았으며, 윤희구 목사(경남성시화운동본부 회장)가 큰 역할을 감당했고, 당시 하성식 함안군수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조해진 의원(현 경남 밀양시 의령군 함안군 창녕군 국회의원, 장로)이 힘을 써 쪽지예산을 받아내 도비와 군비로 연결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톱니바퀴 맞물리듯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물이 흐르듯이 진행된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된다. 하성식 함안군수는 불교 신자였는데, 이만열 교수가 건넨 ‘손양원 목사’ 책을 읽고 크게 감동이 되어 함안의 대표적인 인물로 세워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한국철강CEO 군수답게 과감한 추진력과 통찰력으로 협력하여 함안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칠원교회 역사가 낳은 신앙의 인물을 잊지 않은 부채의식이 버팀목이 되었고, 고신의 인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손양원 목사의 순교신앙과 사랑과 용서의 삶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한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신불신간을 망라한 인물들을 세워 일이 진행되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탄성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역사가 되었다.

#에피소드1 - 칠원교회가 받은 복

당시 칠원교회는 100명이 조금 넘는 교세였는데, 3억 원의 빚을 내고 이자를 갚아나가는 일이 어찌 쉬웠을까? 장로들과 교회 내부에서도 “예배당 건축도 해야 하는데 여기서 그만두자.”라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우리 대에서 포기하면 후배가 어떻게 하겠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런 생각들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을 통과해 결국은 칠원교회도 복을 받았다. 시장통 안에 있는 교회이다 보니 장이 서는 날이면 교회 접근이 쉽지 않았고,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오랜 인내 끝에 손양원 기념관 옆으로 이주해 새 교회당을 짓고 20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으니까. 손양원 기념관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의 위용은 함안을 대표하는 교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양원 기념관이 마치 칠원교회 부속 건물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에피소드2 – 불교 신자였던 고레스 하성식 군수

기념관이 건립될 때까지 군수가 세 명 바뀌었다. 정작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던 인물들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중 한 명은 교인이었는데도 ‘종교 편향’의 오해를 받을까 몸을 사렸다. 그런데 불교 신자였던 하성식 군수 때 모든 일이 다 이뤄졌다. 하성식 군수의 역할에 대해 칠원교회와 손양원 기념관, 기념사업회 모두는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칠원교회가 있던 자리를 이전하는 데 큰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양원 기념관이 세워지는데 고레스왕과 같은 힘이 되었던 군수였으니까. 군수 시절 군책사업으로 칠원교회가 있던 공간을 시장 주차장 부지로 사용하려고, 6억 원에 매입해 주어 칠원교회가 손양원 목사 기념관 앞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얘기하던 중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이날 기자와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이성구 목사, 손양원 기념관장 박유신 목사, 칠원교회 담임 최경진 목사와 함께 당시 군수였던 하성식 한국철강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CEO를 예고 없이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선뜻 응해준 하성식 회장의 함안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손양원 목사에 대한 각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박유신 목사의 중재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 이 날 만남은 오랜 회포를 푸는 시간이요 그간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아쉬움도 풀어낸 시간이었다. 하성식 회장은 “손양원 목사는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로도 손색이 없다”라는 확신으로 이 일이 추진되었음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안목의 인색함이 부끄러워졌다. 고레스와 같았던 하성식 CEO의 혜안과 추진력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다. 주머니에 손양원 목사의 기사를 넣고 다녔던 하성식 군수는 250억 원 장학재단도 공약대로 실천해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기반도 마련하였다.

#에피소드3 - 창원세광교회 김영한 전도사

칠원교회가 매입하고 싶었던 땅은 주인의 거부로 포기했던 땅이었고, 그 옆에 각진 땅을 매입하려고 계약금까지 가져왔는데 다른 사람이 중간에서 다운(down)계약으로 채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 후 사고 싶은 땅이 나왔고, 돈도 없이 덜컹 담보로 1256㎡를 매입하였다. 이 어간에 기독교보 기사를 보고, 칠원교회 최경진 목사를 주일학교 중고등부 때 가르쳤던 여전도사 한 분(창원세광교회 김영한 전도사)이 최경진 목사의 형과 연결되어 연락이 왔다.

30년 전 땅을 불하받고 시골교회를 짓는데 드리겠다고 작정하고 기증할 만한 교회를 찾고 있었는데, 기독교보를 통해 연결되어 기증을 받아 큰 힘이 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39에 세워진 ‘함안군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재정과 수고의 땀이 있었다. 그중에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와 칠원교회 당회와 교인들이 가장 가까이서 힘겹게 지켜온 공이 작지 않아 보인다. 이런 수고로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을 통해 손양원 목사의 순교신앙과 사랑과 용서의 삶은 후세에 길이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으로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와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추진하려는 70주기 기념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기도해 본다.

▲옛군수와 함께. 왼쪽부터 칠원교회 최경진 목사, 기념관장 박유신 목사, 하성식 회장, 기념사업회장 이성구 목사
▲옛군수와 함께. 왼쪽부터 칠원교회 최경진 목사, 기념관장 박유신 목사, 하성식 회장, 기념사업회장 이성구 목사

손양원 목사 70주기 기념사업

◯ 순교 70주년 기념예배 및 학술발표회

일시: 2020년 9월 중

장소: 미정(부산, 경남권 예정)

◯ 제1회 손양원 UCC공모전

일시: 2020년 6월 중

대상: 전국 고등 및 대학생

◯ 청소년 사생대회모전

일시: 2020년 9월

장소: 손양원 기념관

◯ 손양원 특별전시회 ‘거리에서 손양원을 만나다’

일시: 2020년 9~10월

장소: 경남 및 수도권

주관: 기념사업회,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손양원기념관 함안군, 경상남도

◯ 2020 현충 시설 체험 박람회 참가

일시: 2020년 10월 중

장소: 독립기념관 내 특설 박람회장

내용: 박람회에 참가한 모든 국민에게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의 삶과 그의 뜻을 기리고, 손양원기념관(함안) 홍보

참가: 기념관 관장, 사무처장 및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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