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사람(고전 6:3-4; 히 1:14; 2:7-9)
성경에는 천사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이 짧은 지면에서 천사론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사와 인간 사이에 어떤 놀라운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1) 구약시대
구약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인간보다 더 높은 신분으로 더 큰 권세와 능력을 행사합니다. 에덴동산을 지키는 직무는 원래 아담의 몫이었습니다(창 2:15). 그러나 그가 실패하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다(창 3:24).
그 이후로 구약시대 내내, 그 지위와 권세와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언제나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천사 앞에서 인간은 엎드리고 그에게 복종합니다. 천사는 (마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합니다(행 7:53; 갈 3:19). 천사는 (마치 레위인과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사 6:1-3), 죄인인 인간을 심판으로부터 보호합니다(사 6:5-7; 욥 33:23). 천사는 (마치 왕처럼) 하나님의 군대 또는 병거가 되어 심판을 행합니다(시 68:17-18; 참고. 시 18:10; 단 7:10; 계 5:11). 하나님의 보좌인 언약궤를 멜 때에도 맨 아래에는 인간이, 그 위에는 천사(그룹)가 위치해(출 25:18-20) 맨 위에 (상징적으로) 앉으신 하나님의 발등상이 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도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는 수치를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저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예수를 보니”(히 2:7-9).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만물과 사람과 천사로부터 오히려 경배와 섬김과 찬송을 받으셔야 할 그분이….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소식까지도 천사가 인간에게 전해야 했습니다(눅 2:8-12; 마 28:5-7).
성탄절에 인간보다 천사가 먼저 찬송하고 예배했습니다(눅 2:13-14, 2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분 자신이 선지자로서 아버지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지셨습니다. 왕으로서 우리의 대적, 즉 죄와 사망과 사탄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3) 오순절 이후
그런데 우리의 선지자, 제사장, 왕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시자, 하늘과 땅에 전무후무한 대역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하늘 보좌에 앉으심으로 하늘의 질서가 개편됐습니다. 그분이 땅 위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땅의 질서도 개편됐습니다.
성령 받은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이었습니다(행 2:11). 이는 분명 “하나님 높임”, 즉 (새 시대의 제사장으로서) 그분께 송영을 올려드리는 경배였습니다(참고. 행 10:46; 11:15). 그 다음, 사도 베드로는 (새 시대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행 2:14-40). 그리고 사도들은 (새 시대의 왕으로서) 무려 삼천 명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을 치리하며 감독했습니다(행 2:41-42). 오순절이 되자, 이제 인간이 천사보다 앞서 이 일을 주도했으며, 천사들은 관객이 됐습니다.
이로써 구약시대부터 오순절 이전까지 이어져오던 제비뽑기(행 1:24-26)는 투표로 바뀌었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해(직역: 거수로 투표해)…”(행 14:23). 왜냐하면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려 아는 친구가 됐기 때문입니다(요 15:13-15; 참고. 마 28:19-20; 행 20:27; 요일 2:27). 이제는 하늘 천사 대신 교회의 직분자들, 즉 인간 사자(使者)들이 말씀과 권징으로 천국을 열고 닫는 권세를 행사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신앙고백서 30:1-2; 하이델베르크 83-85문답; 계 1:20).
새 제사장이 된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세례와 성찬으로 성도들을 보호하며, 악한 세상을 복음으로 중보합니다. 새 선지자가 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배우며 전합니다. 새 왕이 된 교회는 복음 설교와 권징과 전도와 선교를 통해 교회 안팎을 심판합니다. 천사의 심판을 받던 사람이 오히려 세상을 심판할 뿐 아니라 천사까지도 심판합니다(고전 6:3-4). 사람의 경배를 받던 천사는 오히려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해 섬기는 종들이 됩니다(히 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사와 인간의 신분과 권세가 역전됐습니다. 할렐루야!
권기현 목사 / 로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