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레위기서를 묵상할 때 너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구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레위기서는 온통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구분하라’등 옷부터 음식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구별할 음식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은 먹어도 되고 저것은 먹으면 안 되고. 짐승 중에, 물고기 중에, 새 중에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는데, 그렇다면 인준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구분하신 특별한 기준이 있었을까? 왜 어떤 것은 정하고 어떤 것은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걸까? 왜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진 것은 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부정하다고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어떤 것은 먹어도 되는 정한 것이고, 어떤 것은 먹으면 안 되는 부정한 거라고 하셨을까? 성경을 읽어보아도 그렇게 구분하신 이유와 기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더라고. 음식뿐 아니라 성전의 디자인도, 대제사장의 옷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혹은 기준)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야.


아마도 그것 자체가 정하고 부정하다기보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시는 게 아닐까? 구별된 자라는 것은 기준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은 무조건 선하시기 때문에 순종하는 자라는 뜻이 아닐까 싶어. 상식에 합당하니까,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만하니까, 자신의 생각에도 그럴듯하니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웃사가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궤를 붙들었는데 죽은 이유도 하나님의 궤 자체가 사람을 죽일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지지 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거야. 왜 만지면 안 되는지, 왜 그것이 죽어야만할 큰 잘못인지에 대한 이유는 말씀하고 있지 않잖아.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은 누가 보더라도 합당해 보이는 행동이고,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한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것이면 안 된다는 거야. 구별된 자, 하나님의 백성은 상식적인 것이, 혹은 이성적인 판단에 맞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에 대해 비록 이유는 알지 못해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구별된 자이니까 하나님이 기준인 것에 익숙한 자가 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 생각해.


성경말씀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거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성경말씀을 읽으므로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지기도 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윤리적인 반듯한 삶에 대해 알 수 있기도 하고, 때로는 철학적인 깊은 사고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묵상함으로써 얻어지는 보너스 같은 것이지(이런 보너스가 없어도 상관없고), 핵심은 아니야. 성경은 전적으로 선하신 삼위 하나님 자신이 언제나 구별된 자의 기준이며 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너의 언행의 기준은 하나님에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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