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전에 성경을 읽을 때 상상력을 동원해서 읽어보라고 말해준 거, 기억하지? 그 때 말해준 상상력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창세기 말씀으로 QT 할 때 이런 저런 상상을 했던 것이 있어.


그 중의 하나인데 창세기 3장 7절과 21절 말씀이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장 7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제일 먼저 했던 행동,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입은 장면이야. 21절은 나뭇잎 치마를 입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징계의 말씀을 하시고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내용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장 21절)


가죽옷을 입히시려면 동물을 죽여야 했을 텐데 그 완벽했던 에덴동산에서 동물을 죽이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통한 심정이 들었어.


어머니의 주된 호기심은 이거였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왜 몸을 가렸을까? 다른 곳이 아니라 몸을! 그리고 하나님 또한 나뭇잎 치마를 벗고 이전처럼 살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뭇잎 치마를 가죽옷으로 바꿔 입혀주셨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너와 어머니가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는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겠지만 몸을 가렸다는 것을 계속 생각했었어. 그러면서 상상해본 것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옷의 원래 용도는 몸을 가리기 위함이라는 거야. 요즘처럼 성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도구도 아니고, 자신의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도, 옷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했었어.


두 번째는 요즘 어머니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상황이 아니면 벗으면 안 된다는 거야. 자신의 벗은 몸을 타인에게 보여줘서도 안 되고 타인이 벗은 것을 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목욕탕 등의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지? 이성 간에 혹은 성적인 목적으로 벗는 것을 말해). 선정적인 19금 영화든 이상한 동영상이든 사이버 상황이든 실제 상황이든 벗은 것을 보거나 보여줄 권리가 없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 사회학자는 그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분별하는 척도로 살인이나 강도의 빈도가 아니라 성적인 타락에 두었어. 네 주위를 생각해 봐. 영화의 내용, 대중음악 가사, 사이버 게임, 청소년들의 일탈 행동, 사회적인 문제 등 정말 심각하다는 걸 너도 알거야. 그만큼 우리 사회도 심각한 거지. 성경은 거듭해서 음란과 음행을 피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기독교인 중에도 피하기는커녕 즐기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거야.


기독교인만이라도 음란과 음행을 피한다면, 그것의 시작을 아주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옷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상황에서는 절대 벗거나 벗은 것을 보지 않겠다는 것을 실천한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가장 추하게 만든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에 가죽옷을 입히신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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