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그 동안 잉글랜드 종교개혁 역사에 종종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청교도’란다. 도대체 ‘청교도’가 뭔지 궁금했지? 이번에는 청교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해보자. ‘청교도’는 잉글랜드에 있었던 종교개혁자들의 몸부림이란다. 이미 얘기해주었다시피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가 개인적인 이유로 로마교회로부터 이별을 고하고 독자적인 잉글랜드 국교회를 만들면서 시작되었지.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어. 로마교회와 관계를 끊긴 했지만 정치적 차원이 강했지. 사실은 예배형식도 비슷했고 교회의 우두머리가 교황에서 왕으로 바뀐 정도의 차이였을 뿐이야. 잉글랜드만의 기독교(Anglican Church)를 만들려고 한 것이지. 그래서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로마교회와 유럽 종교개혁의 중간 길(via media)의 위치에 서 있었단다.

하지만, 잉글랜드에는 대륙처럼 제대로 된 종교개혁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잉글랜드 국교회가 적당한 종교개혁의 위치에 머물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제대로 된 종교개혁을 원했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로 싸웠단다. 그들이 바로 ‘청교도’야! 잉글랜드 국교회를 제대로(깨끗하게) 개혁(purify)하려고 했기 때문에 ‘퓨리탄’(Puritan), 즉 ‘청교도’(淸敎徒)라고 불러.

아이러니하게도 청교도는 로마교회를 좋아하는 왕보다는 개신교를 지지하는 왕이 다스리던 시기에 생겨났단다. 메리 여왕 때 박해를 피해 여러 유럽 나라로 피난했던 청교도들이 엘리자베스 1세가 1558년 왕이 되면서 고국으로 대거 돌아왔지. 이들은 제대로 된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단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어. 엘리자베스 1세는 심지어 ‘통일령’(Act of Uniformity)을 만들어 청교도들을 힘들게 했지. 국가교회는 국왕의 권위에 당연히 복종해야 한다고 요구했단다. 청교도는 강하게 반대했어. 청교도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였던 토마스 카트라이트(T. Cartwright, 1535-1603)는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나 네덜란드와 제네바를 전전해야 했단다. 그는 노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엘리자베스가 죽은 같은 해 1603년에 세상을 떠났지. 안타깝게도 개신교도였던 엘리자베스 1세 통치 시절에 청교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세력이 결집되는 현상이 일어난 거란다.

다음 왕 제임스 1세 때도 여전히 청교도는 핍박받았지. 잉글랜드 국교회의 명령을 반대하는 청교도를 옥에 잡아넣었어. 당시 사람은 청교도를 여러 별명으로 불렀단다. 첫째, 일반적으로 불렸던 이름은 ‘규칙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Precisian)이야. 세월이 가면서 청교도에 대한 별명이 여러 개 더 생겨났어. 여러 종류의 청교도가 있었다는 뜻이지. 국교회의 법과 교리에 반대하는 자들이라는 말로, ‘반대자’(Dissenter) 혹은 ‘비국교도’ 혹은 ‘비 순응주의자들’(Non-conformists)이라 부른단다. 이들은 국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런 저런 반대를 외친 자들인데, 18세기에는 ‘저교회파’(Low Church)로 불리지. 예배 형식과 직분의 위계로부터 자유하려하며 복음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요구했단다. 20세기의 존 스토트(John R. W. Stott, 1921~2011) 같은 목사가 이에 속해. 어떤 청교도는 기존 교회를 개혁할 수 없다고 보고, 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갔어. 그렇다고 해서 ‘분리주의자’(Separatist)로 부르기도 해. 청교도들이 자신들을 향해 즐겨 부른 이름은 ‘경건한 자’(The Godly) 혹은 ‘성도’(The Saints)였단다.

후대 사람이 청교도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이 있어. 청교도는 비판만 일삼고 순진한 사람들을 지옥불로 위협하며, 죄를 지적하긴 잘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바꾸지 앉는 위선자이며, 삶이 엄숙해 숨이 막힐 지경이며, 검정 옷만 입어 패션 감각이 없고, 남녀가 유별할 뿐만 아니라 성적 쾌락을 죄악시하며,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조장한다고 비난받지. 이런 비난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오해들로 덧 씌워졌다는 것도 알아야 한단다. 청교도는 신앙과 삶이 균형 잡힌 신실한 성도들이야. 죄를 멀리하고 미워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과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맘껏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지. 청교도 교인이 주일에 즐겨 입던 검은색 옷은 당시 전통에서 볼 때 고급 패션이었다고 해.

결론을 내리면 청교도는 여러 유형이 있고 잉글랜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종교개혁을 이끈 개신교인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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