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어가자 독일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단다. 성도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만 형식만 따르고 마음은 세상에 빠져있었어. 설교를 들어도 마음으로 받지 않고, 죄를 지적해도 회개하지 않고, 봉사와 헌신의 삶이 없었단다. 교회 목사도 성도들이 싫어하는 설교를 피하고 성도들의 삶에 대해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되었지. 교회가 아무리 좋은 교리, 건물, 그리고 조직을 소유하고 있어도 이렇게 개인의 영적인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단다. 정말 조심해야 해!


1635년 쉬페너(Philipp Jacob Spener, 1635-1705)라는 사람이 태어났어. 그는 영국의 존 번연과 조지 폭스가 살아있던 동시대 사람이었지. 166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목사가 되었어. 그는 복음보다는 도덕만 강조하는 목사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기 집에 모아 성경을 공부하고 삶을 나누며 기도했지. 교회 안에 있는 소그룹이야.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인 셈이란다.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이 소그룹에 참여해야했지.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그는 교리가 이런 깡마른 잘못된 삶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어. 교리적 지식이 풍요한 삶을 망쳐버린다고 오해했지. 그는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이라고 가르쳤어. 이런 목적으로 모인 소그룹을 ‘경건모임’(Collegia Pietatis)이라 불렀단다. 이렇게 시작된 경건운동을 ‘경건주의’(Pietism)라고 부르지.


이런 경건주의운동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 경건주의운동은 성경이 가르치는 삶의 모습과 같은 것일까? 쉬페너가 발견한 교회의 문제는 정확했어. 하지만, 그 해결은 틀렸지. 성도는 바른 믿음(교리)뿐만 아니라, 바른 삶을 살아야하지. 그런데 삶이 바뀌지 않는 것이 교리 때문일까? 결코 아니지! 성도의 삶이 형편없는 것은 그의 믿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야. 바른 믿음은 바른 삶을 동반하지. 교리를 바르게 믿지 않으면 삶도 따르지 않는단다. 삶의 문제를 교리 탓으로 몰아간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과 같지.


그래도 경건주의는 독일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 어느 날(1687) 쉬페너를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24살 된 청년,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였단다. 쉬페너는 프랑케를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이 세운 할레(Halle) 대학에 프랑케를 불러 후계자로 세웠어. 프랑케는 정책과 조직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단다. 프랑케는 할레대학을 독일 경건주의운동의 중심지로 키웠지. 할레에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어(1695). 독일 전역에서 기부금이 모여들었어. 친구의 권유로 시작된(1710) ‘성경연구모임’(A Bible Institute)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모임이야. 프랑케는 18세기에 무려 60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기도 했단다. 이들은 독일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안에서 경건운동을 시도했다는 특징이 있어. 1727년 프랑케가 죽고 난 이후 독일의 경건주의는 다시 시들해졌어. 그들은 독일교회 안의 조용한 개혁운동을 일으켰지.


독일 경건주의가 교회에 기여한 것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많았단다. 경건주의의 특징은 삶인데, 특히 금욕적 자기부정을 강조했어. 경건주의는 교회의 모든 형식을 터부시하게 되고 개인주의적 광신주의 혹은 신비주의로 흐르기도 했지. 기성 교회의 공 예배와 성례를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었단다. 프랑케는 신학교에서 학생이 잠시라도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 뿐만 아니라, 지적인 건전한 토론과 비평도 허용하지 않았단다. 경건주의가 교회 안에 머물렀지만,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에 무관심했어.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지. 교회는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하나의 껍질 정도로 여겼을 뿐이야.


17세기 독일교회가 교리를 강조했다면, 18세기 경건주의는 삶을 일방적으로 강조했어. 그러다보니 18~19세기 독일교회는 교리가 약해지면서 신학적 ‘자유주의’(Liberalism)와 철학적 ‘현대주의’(Modernism)의 공격에 힘없이 넘어지고 말지. 독일 종교개혁의 유산인 루터교회는 교리가 약화되면서 인본주의가 침투하며 영적으로 나약해 지고 말았어. 지금도 루터교회는 자유주의와 경건주의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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