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변화

▲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아프리카 본토는 지리상의 발견(15~16세기) 이후 유럽의 적극적인 침략 대상은 아니었단다. 유럽인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어들였어. 주로 16~18세기에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가 참여했지. 독일, 스웨덴과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어. 값이 나가는 노예, 일명 ‘검은 상아’(Black Ivory)를 얻기 위해 먼저 아프리카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공격했지. 이렇게 아프리카인들이 서로 빼앗은 노예를 서양 노예상인이 총과 돈을 주고 사서 아메리카로 수출했단다. 16~19세기까지 아메리카로 팔려간 노예가 1,200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프지!

아프리카 남·동부에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 중의 하나인 마다가스카르(Madagascar)가 있단다. 그 섬 고원지대에 호바(Hoba) 부족이 살고 있었지. 그 부족장이 유럽으로부터 총을 수입하고 강자로 부상했어. 뿐만 아니라,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회심한 후 유럽 선진문화와 기술을 적극 도입했지. 영국의 교사와 선교사들을 초청했단다. 1914년 즈음에는 개신교인이 40만 명이나 되었어.

본래 유럽인은 사하라(Sahara)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단다. 사람 살기가 어렵다고 보았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개신교 선교의 폭발적 증가로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내륙을 탐험하기 시작했어.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과 헨리 스텐리(Henry M. Stanley, 1841~1904)는 험난한 아프리카 내륙을 탐험하고 지도를 그려 선교의 길을 열어놓았단다. 리빙스턴은 스코틀랜드 기독교인으로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후 로버트 모팻(Robert Moffat, 1795~1883)을 통해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했어. 리빙스턴은 모페트 선교사의 딸과 결혼했지.

선교사의 아프리카 탐험은 수많은 유럽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케 했단다. 아프리카에서 죽은 리빙스턴의 선교에 감동을 받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The Free Church of Scotland)와 국교회(The Church of Scotland)는 중부 아프리카 나이아사 호수(Lake Nyasa) 주변에서 선교를 시작했단다. 스텐리는 아프리카의 고원지대인 우간다(Uganda)에서 므테사(Mtesa) 왕에게 복음을 전해 개종시켰고 더 많은 선교사를 불러들였어. 선교사는 아프리카 부족언어에 문자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며 수많은 개종자를 냈단다. 19세기 말엽에는 아프리카 지역이 유럽 국가의 식민지 쟁탈 각축장이 되었지. 심지어 1914년에는 유럽 국가가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지역을 서로 나눠 차지한다는 결정을 했어.

라틴 아메리카는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 서서히 독립했어. 아이티(1804), 파라과이(1811), 베네수엘라(1811), 아르헨티나(1816), 칠레(1818), 콜롬비아(1819), 페루(1821), 멕시코(1821), 브라질(1822), 볼리비아(1825)가 차례로 독립했단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페닌슐라레스’(Peninsulares)와 오래전부터 정착한 이민자들의 후손인 ‘크리올로스’(Criollos)로 나뉘어 투쟁이 끊이지 않았어. 프랑스에서 흘러들어온 공화주의 사상이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었지. 혁명을 통한 권력 장악은 대체로 크리올로스 계급이 가졌지만, 시민의 욕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으로 빈부의 격차는 커졌고 사회는 불안했단다. 사회는 ‘보수주의’(식민지주의자)와 ‘진보주의’(공화정주의자)로 나눠지기도 했어. 19세기 한 때 공산주의 사상이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하지. 또 경제 발전을 위해 질서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독재정부가 나타나기도 했단다.

이런 가운데 로마 천주교회는 기존 질서를 지지하고 새롭게 유행하는 민중의 혁명을 거부했어. 라틴 아메리카 시민은 점점 로마 천주교회와 멀어지게 되지. 영세를 받은 시민이 많았지만, 종교 교육의 부재로 명목상의 로마 천주교인이 대부분이었어. 바로 이 빈 자리에 개신교회가 자리 잡는단다. 19세기 후반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자가 라틴 아메리카로 몰려들었어. 새로운 이민자는 상공업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인디언이나 흑인과 균형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했지. 이민자의 대부분은 개신교였단다. 개신교 선교는 교육과 의료를 통해 활력을 띠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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