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 구본철 화백
▲ 삽화 : 구본철 화백


19세기는 선교의 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파송되었단다. 하지만, 선교에 대한 이해가 점점 다양해졌어. 자유주의자가 주장하는 선교는 부흥운동적 복음주의자와 달랐지. 물론 정통 개혁 신학적 선교도 아직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장로교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인 메이첸도 선교에 관심을 기울였어.


북 장로교회의 해외 선교부에는 철학 교수 윌리엄 호킹(William E. Hocking, 1873~1966) 박사가 주도한 연구가 있단다. 그 내용을 보면 자유주의적 냄새가 많이 풍겨. 들어 볼래? 호킹의 보고서, ‘선교를 재고한다: 선교 100년에 대한 평신도 조사’(Rethinking missions, 1932)는 기독교는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고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타종교와 협력해야한다고 주장했지. 선교에 대한 입장이 상당히 개방적이었단다.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던 펄 벅(Pearl S. Buck, 1892~1973)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었어. 선교사의 자녀였지. 펄 벅이 고국을 방문했을 때 호킹의 보고서를 읽고는 찬사를 보냈단다. 그녀는 ‘하퍼즈’(Harpers)라는 잡지에 호킹의 관점에서 새로운 선교적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 글이 교회 가운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지. 한 번 들어 봐. “선교사인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야?’하는 것은 우리 삶에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저는 ‘그분을 존경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마 그리스도는 역사상 가장 선한 분일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에 대한 전부입니다.”(Christian Century 49(23 Nov. 1932)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겠니? 펄 벅의 생각은 메이첸이 염려하며 지적했던 문제를 잘 나타내고 있단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관심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교리/ 교훈, Doctrina)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지. 복음은 교리이고, 교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말이야!


펄 벅은 1931년 ‘대지’(The Good Earth)라는 책을 써 미국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단다. 193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지. 그녀의 영향력은 북 장로교회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대단했어. 그런데 펄 벅은 선교사를 ‘수준 낮은 사람’으로 표현하며 비판했단다.


미국 북 장로교회는 발칵 뒤집혔어. 아무리 그래도 선교사가 복음에 관심이 없고 문화에만 관심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단다. 선교부는 그녀를 사임시켰지. 물론 북 장로교회는 ‘선교를 재고한다’라는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 보고서를 썼단다. 남 장로교회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어. 북 장로교회는 보고서에서 ‘아예 선교를 하지 말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지!’라며 비꼬았단다. ‘코브라에 물린 사람에게 빵과 우유로 반죽된 고약을 붙여준 것과 같다’고 일축했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북 장로교회는 그 보고서에서 염려했던 방향으로 변해갔단다. 미국의 선교정책은 영혼 구원보다는 교파 간의 협력과 사회 정의, 그리고 토착 교회의 설립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변해갔단다. 펄 벅은 선교사였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현지 문화에 들어가 함께 살았지. 그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라고 본 거란다. 복음보다는 인간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기에도 자유주의적인 신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거야. 펄 벅은 엄격한 선교사 아버지의 삶을 싫어했단다. 그의 아버지는 근본주의적 미국 장로교 선교사였어.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믿겠다는 열정은 있지만, 성경 전체를 잘 정리한 교리적 지식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열심히 성경 말씀을 전하기는 했지만, 정작 복음을 전하는 자신은 복음의 능력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 믿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았어. 종종 그들이 믿고 행동하는 것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많았단다. 그들의 삶에는 복음의 능력이 자연스럽지 않았어. 이런 근본주의적 경향은 미국뿐만 아니라 선교지에서 문제를 종종 일으켰는데 펄 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


부모의 근본주의적 삶에 실망한 자녀들은 빗나가 자유주의적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의 멋진 삶에 감동하곤 했단다. 자유주의자들은 복음(교리) 보다는 멋진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교리적 배경이 없으니 삶의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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