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제1차 대각성의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란다. 그의 두 제자인 밸라미(J. Bellamy, 1719~1790)와 홉킨스(S. Hopkins, 1721~1803)도 중요한 역할을 했단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어. 11명의 자녀 가운데 가장 명석했다고 해. 13살이 되기 전에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 히브리어를 잘해서 예일대학에 입학했단다. 신학을 공부한 후 19살에 목사가 되었어. 예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1년 정도 했지만 외조부님이 목회하시던 교회를 맡아 섬기게 되었지. 그는 칼빈의 신학과 신앙에 푹 젖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교리를 잘 배웠단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이 구원 받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누가 선택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칠 수는 없었지. 그렇지만 설교자는 누구에게나 죄의 심각성과 인간의 비참함을 설교하고 회개하도록 촉구해야한다고 주장했던 개혁 신앙인이었어. 그의 신학과 설교는 존 웨슬리와 달랐고 조지 휫필드와 상당히 일치했단다. 그는 선동가도 아니고 타고난 부흥 강사도 아니었지.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아르미니우스적 신앙에 반대했단다. 그는 1734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라는 다섯 편의 시리즈 설교를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어. 그 도시의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왔단다. 3백 명은 당시 그 동네의 모든 어른들의 숫자였어. 말씀을 듣는 중에 울음을 터트리거나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조나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단다. 이것을 제1차 대각성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보지.


에드워즈는 부흥을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라고 설교했지. 그는 예일대학 채플에서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표’(The Distinguishing Marks of the Spirit of God)를 설교했단다. 에드워즈는 설교를 듣는 청중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정죄하기도 했어. 참된 회개의 시금석은 감정을 넘어서는 책임 있는 삶이라고 가르쳤지.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주의(Evangelicalism)의 시작점에 있었지만, 그는 칼빈주의 신학적 입장에 서 있었단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성찬에 참여시키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지. 이들을 가리켜 ‘일관성 있는 칼빈주의자’(a Consistent Calvinist)라고 부르기도 해. 이들은 이신론을 믿거나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대항했단다.


그 뒤 1740년 휫필드가 미국을 방문해 설교하면서 제1차 대각성의 불을 붙였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은혜에 대해 설교했지. 철저한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설교했지만 부흥이 있었단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했단다.


다른 한편 존 웨슬리는 아르미니안적 신학을 가지고 있었지. 하나님의 절대주권보다는 인간의 절대자유를 믿고 회개를 요청했는데 거기에도 부흥이 일어났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는 철저한 잉글랜드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 받았단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이신칭의)는 주장에 있어서는 ‘개혁신앙의 전통’을 따르고 있어. 웨슬리는 은혜가 어떻게 인간에게 오는가에 대한 교리에서 정통 개혁신앙과 달리 아르미니우스의 신학을 따랐어. 인간 스스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가르쳤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고의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지.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삶, 곧 성화를 강조했단다. 이 점은 개혁신앙에서 강조하는 신앙과 삶의 일치와도 비슷했지. 하지만, 웨슬리는 완전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어. 이 점에서 개혁신앙과 다르단다. 개혁신앙은 인간이 결코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다고 봐.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을 뿐이야. 제1차 대각성은 1763년 절정에 이르고 수그러들었단다. 제1차 대각성은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뿐만 아니라, 감리교회까지 큰 영향을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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