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13세기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쓴 ‘동방견문록’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단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포르투갈이 먼저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일본에 교역소를 설치하면서 다른 유럽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나섰지. 16세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스리랑카 등의 인디아(India) 대륙과 중국(China)에 로마 천주교 선교사들이 진출하였고, 18세기 초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했고, 19세기에는 영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했어. 본래 영국 동인도회사는 100년이나 기독교 선교활동을 반대했단다. 개신교 선교가 그들의 교역을 방해하고 토착민과의 관계를 긴장시켜 폭동을 불러올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이야.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1)는 선교를 위해 ‘이방 특별 침례 선교협회’(The Particular Baptist Society for Propagating the Gospel among the Heathen)을 조직했어. 1793년에는 그가 직접 인도(India)로 가서 선교를 시작했단다. 캐리는 인도로 갈 때 영국 정부의 반대 때문에 덴마크 배를 이용해야했지. 영국령 인도 선교가 여의치 않자 덴마크 령 인도 서쪽 세람포르(Serampore)로 옮겨 성경을 번역해 보급하는 일을 했어. 그는 나중에 35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복음 전파의 기틀을 마련했단다.


다음 세대 선교사 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1806~1878)는 교육에 헌신하여 캘커타 대학을 세우는 데 일조했지. 100년 후 인도가 독립했을 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자였고 인도는 개신교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기독교 교육의 영향이란다. 선교사는 인간 평등을 가르친 결과 카스트제도의 인종 차별이 도전받고 하층민과 여성들이 대거 기독교로 개종했어. 판디타 라마바이(Padita Ramabai Sarasvati, 1858~1922)라는 인도 여성은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인도 교회와 사회에 중요한 공헌을 했지.


태국(Thailand)은 동쪽에 프랑스, 서쪽에는 영국이 지배하면서 종교가 달랐단다. 당시 버마(Birma)로 불리던 이곳에는 아도니람 저드선(Adoniram Judson, 1788~1850)이 선교했어. 그는 1806년 제2차 대각성 때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서원했단다. 1810년 미국 선교협회 파송으로 저드선은 버마로 향했어. 그곳에서 저드선은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고난 가운데 성경을 번역해 복음을 전했지. 그의 선교의 열매로 7천명이 개종했단다. 그의 사역의 결과 1957년 316개의 기독교 학교, 1,061개의 교회당이 세워지고 103,904명의 성도와 1,719명의 사역자를 둔 규모가 되었지.


중국(China)은 16세기 로마 천주교 선교사들이 들어가 선교했단다. 마태오 리치가 1582년 중국에서 선교하며 상당한 개종자를 내었어. 하지만 교황청 내부의 문제로 선교는 지지부진했지. 19세기에 스코틀랜드 출신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 Morrison, 1782~1834)이 광동성에서 선교했단다. 7년 동안 한 사람의 개종자도 얻지 못했지만, 그는 최초로 신구약 성경과 기독교 책을 번역해 출판하며 중국 선교의 소중한 토대를 마련했어. 그는 1818년 조선에 최초로 영국인 바실 홀을 통해 한문성경을 전달했다고 알려졌단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


그러던 중 서구의 수치스런 사건 중 하나인 일명 ‘아편전쟁’(1839~1842)이 발발했단다.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영국 상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어. 전쟁은 중국의 패배였지. 결국 영국은 난징조약을 통해 홍콩을 양도받고 중요한 5개 항구를 강제 개항시켰단다. 선교사와 기독교인에게 특혜가 주어졌지.


그런데 홍수전(洪秀全)이 기독교 사상을 원용해 ‘태평천국의 난’(1850~1864)을 일으켰단다. 그는 ‘태평천국’을 만들기 위해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남녀평등을 이루고, 매춘과 간음과 노예제도와 전족제도 그리고 아편 흡연과 음주를 금지했어. 그가 난징을 점령하고 베이징까지 넘보자 중국은 서구 열강의 힘으로 반란을 제압해야했단다. 15년간 2천만 명이 사망했으니 끔찍한 사건이었어. 이때부터 중국인은 외래 종교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단다.


태평천국의 난이 진행 중일 때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가 중국에 도착했지. ‘중국 내지 선교회’를 조직한 그는 중국인 복장을 하고 선교사의 특권을 포기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선교했단다. 이 토착화 선교정책으로 19~20세기에 수만 명의 개신교 선교사가 사역하고 교회들이 세워졌어. 중화인민공화국(1949)이 세워지면서 기독교 전파가 제한 받기 전까지는 중국의 복음화 속도는 놀랄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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