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구본철 화백
▲ 삽화: 구본철 화백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는 어떻게 선교가 진행되었을까? 여기에서는 대략적인 선교과정을 얘기해보려 한단다. 잘 들어 보렴!


일본은 16세기부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들과 교류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고수했단다. 1612년 로마 천주교 선교 금령이 내려진 이후 1867년 메이지 유신까지 쇄국정책은 이어졌어. 마침내 1873년 일본에도 종교 활동이 허용되었지. 일본은 오랜 막부시대를 마감하고 왕정복고가 일어나고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꽤하였어. 1854년 미 해군 제독 페리(M. C. Perry, 1794~1858)가 군함으로 위협해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킨 것이 계기가 되었지. 그 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러시아가 상호통상조약을 맺어 교역을 시작했단다. 이렇게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선진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어. 일본은 서구 열강들이 한 것처럼 중(청)국(1894~1895)과 러시아(1904~1905)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1910)을 강제로 병합했지. 바로 이 시기에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들어가 선교활동을 펼쳤단다.


한국은 일본의 강요로 1876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고, 그 뒤 미국(1882), 영국(1883), 러시아(1884)와 비슷한 조약을 맺지. 나라가 외국에 개방되면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1884년 마침내 장로교 선교사 알렌(H. N. Allen, 1858~1932)이 들어오고, 1885년에는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가 입국했단다. 대체로 식민 국가가 기독교 국가인데 비해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기독교가 애국하는 종교로 비친 것은 특이한 점이었지. 그 후 한국 개신교회는 근대화와 더불어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었단다.


필리핀은 오랜 스페인 식민시대(1565~1898) 동안 로마 천주교회가 전파되었고 대부분의 주민이 로마 천주교인이야. 1896년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였어. 하지만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 패하고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하면서 필리핀은 다시 미국의 식민지(1898~1946)가 되었단다. 이 기간 동안 개신교 선교가 이루어지지만, 토착화된 필리핀 로마 천주교인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어. 그래서 필리핀은 개신교회가 소수란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1602~1945)였단다. 1789년까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개신교 선교를 허락하지 않고 싫어했어.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부패한 네덜란드 정부와 착취를 일삼는 식민정책을 반대하며 개혁을 요구했단다. 그 결과 1870년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개혁을 시행했어. 이때부터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선교도 조금씩 진행되었단다. 한편 영국인 제임스 브룩(J. Brooke, 1803~1868)이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에 해적을 토벌한 공로로 사라왁(Sarawak) 지역을 하사받고 왕(Rajah)이 되었지. 그는 교육과 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선교사들을 초청했고 중국 개신교인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개신교 선교에 기여했단다. 무슬림이 지배적인 국가(87%)이기 때문에 개신교 선교의 번성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인구는 10% 정도밖에 되지 않지. 무교(無敎)는 공산주의자로 취급되지. 한 때 공산주의자의 쿠데타(1965)가 있었는데, 중국인이 공산주의자로 지목되어 심한 탄압에 고통을 받았어. 이 때 개신교회가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을 적극 교인으로 받아들여 보호해줌으로 그들의 지지를 받아 크게 성장하기도 했단다.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는 영국의 전설적인 인물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 1728~1779)에 의해 발견되어 영국 이주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가 전파되었어.
뉴질랜드(New Zealand)는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A. J. Tasman, 1603~1659)에 의해 발견되었지. 나중에 영국이 지배하고 본국인을 이주시켰어. 많은 원주민이 영국 이민자들이 옮겨온 질병에 죽어가야 했단다. 뉴질랜드에는 정복자와 이주민이 먼저 오고 나중에 교회가 세워졌지. 개신교회는 정복자와 이주민의 원주민 착취를 소리 높여 비판했어. 학대가 쉬 없어지지 않았지만 효과는 없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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