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목사/서울제일교회

건너가야 할 타이밍이다. 할아버지가 큰 짐가방을 울러 메었다. 할머니는 바리바리 싼 짐 보타리 몇 개를 양손에 쥐었다. 짧게 기도해 주었다. 나도 울고 교수님 부부도 울었다. 큰소리로 울지 못하여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꺼어꺽 거린다. 길게 포옹을 한 후 두 분이 천천히 두만강 가에 들어갔다.


두만강 상류라고는 하나 물살이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물밑의 자갈에 이끼가 끼어 엄청 미끄럽다. 두만강을 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시체들을 몇 구 보았다. 거의 다가 미끄러지면서 물을 몇 번 먹고 자맥질치다가 죽은 경우이다. 굶주린 가운데 넘다보니 힘도 없는 상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떤 시체에는 배에 총구멍이 있었다한다. 한 조선족 전도사가 우연히 그 시체를 보았는데 물고기가 들어갔다나갔다 하는 장면을 보고서는 탈북자 사역에 헌신했었다.


아니라 다를까 염려하는 대로 교수님이 1/4 지점에서 휘청거렸다. 내가 재빨리 뛰어들어가 부축하였다. 결국 나도 두만강을 같이 넘을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두만강을 함께 건넜다. 물은 차가웠다. 하지만 차가움이 느낄 여유도 없다. 할아버지에 온 신경이 집중되며 머리카락이 쭈삣할 정도로 곤두 서있었다. 북한 쪽 둑방에 다다랐다.


북한 초소장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맞아준다. 이미 뇌물을 받은 터이라 무덤덤하다. 나는 급하게 눈인사를 하고 다시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돌아갈 때는 등 뒤가 뜨뜻했다, 왠지 모르는 등 뒤의 기운을 느끼며 두만강을 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 5분이 50분이 되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휴, 돌아와서 선한 사마리아인 공안 집에서 잠을 청했다. 물에 젖은 하의를 말리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점점 의식이 맑아지고 또렷하게 머리 속에 다짐되는 것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아픔과 운명이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민족 분단의 역사, 민족 상잔의 악순환, 아픔... 이 고리가 끊어져야 한다. 아니면 저 두만강은 눈물 젖은 두만강이 계속 될 것이다. 아니 피눈물이 철철 넘치는 두만강이 될 것이다.


한 달 뒤 선한 사마리아인 공안 쪽으로 한통의 인편 편지가 전달되었다. 교수님이 쓴 편지였다.


“아버지 하나님을 영접한 믿음과 영광에 감사드리옵나이다. 무사히 조선땅으로 올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하나님의 자식으로 되는 권세와 자격을 주심에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저 중국 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김선생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깊은 은총을 입게 하여 주셨음에 감사드리옵나이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업적과 뜨거운 사랑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는 말씀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우리 조선 땅을 행복의 요람 아버지 하나님의 지상천국으로 만들어 가는데서 하나님의 충실한 사도가 되기를 노력하겠나이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김동춘 목사/서울제일교회>


저작권자 © 고신뉴스 KN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