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을 하나로 이끈 교회의 역할

베를린 장벽 붕괴 전에도 외부에서는 독일의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가 많았고, 지금 또한 그렇다. 하지만 그 어떤 독일인도 통일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다 독일인이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독일인으로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모두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더 큰 의미에서는 냉전이 끝나고 유럽이 완전한 통합의 길로 들어서는 촉매 역할을 했다


최근 한반도 평화통일의 해법을 독일통일에서 찾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독일이 통일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독일교회에서 그 해법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교회는 분단 하 동독을 도우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분단 시절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교회연합이 동독을 지원한 재정정도를 보면 첫 해 2,300만 마르크로 출발해 197212000만 마르크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였다.


이 교회 재정지원 프로그램은 통일과 함께 1991612일에 역사적으로 종결되는데 이 일에 중추적 역할을 한 기관이 디아코니아재단이었다. 독일교회가 교단을 초월해 동독을 도울 때 가졌던 하나의 기구, 곧 연합체를 형성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입각해 고난당하는 자를 돕는 일이었다.


디아코니아재단은 이념도, 신학도, 정치의 성향도 물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동독을 돕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랑에 대한 당연한 성도의 실천적 사랑일 뿐이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동독과 서독은 달랐지만, 교회만은 그러한 현실 정치를 떠나 특별한 유대관계를 분단 내내 유지했다.


이 특별한 유대관계란 명목적으로 동독에 있는 교회. , 사회주의 속의 교회와의 관계이며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고난가운데 처한 동독주민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을 위해 독일교회는 섬김의 신학을 정립해야만 했다.


이 섬김의 신학은 분단 하 독일교회가 가졌던 통일신학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섬김의 신학은 어렵던 당시 동구권의 교회를 향해 가졌던 서구교회의 실천적 신학이기도 했다. 당시 디아코니아 재단의 책임자로 활동했던 노이캄은 서독교회의 동족을 향한 사랑은 인도주의적 사랑을 뛰어넘어 무엇보다도 복음이 요구하는 주님의 사역으로 감당했음을 잊지 않고 강조했다.


주도홍 교수(백석대)독일교회의 디아코니아는 이제 통일독일에서도 공산주의를 경험한 동부독일의 교회재전을 위해 충분히 이유 있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물론 독일교회는 분단 하에서도 디아코니아를 통해 동독의 동족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다. 문제는 동독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이 봉사가 복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점이다면서, “이러한 독일교회의 경험은 한국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역으로 한국교회는 봉사를 할 때 전도 조건적 봉사를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경우 봉사다운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고, 보다 차원 높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르지 못하게 된다. 순수한 봉사를 그리스도의 복음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서 실행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남북분단 하 교회의 역할은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 정부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가는 그렇게 관심을 쓸 부분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파트너십이란 오직 교회의 길에 서서 유지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가 정부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며, 복음의 원리에 서야 하고, 재정적으로 정부와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와 국가는 서로를 믿어주고 존중하는 신뢰와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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