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이 되는 축복이 되기를

허순길 박사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3년이 되었다. 허 박사의 죽음과 장례는 한국교회에 큰 숙제를 남겼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교회장례문화가 고정적인 토착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분이 남긴 숙제를 풀어 낼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허 박사는 자녀들과 조카인 필자에게 자신의 죽음과 장례에 관한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그대로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장례문화가 과연 성경적인가?’를 경남(법통)노회가 많은 토론과 연구를 거듭하여 지난 총회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그러나 총회는 신학부나 신학교수회에 맡겨 연구나 토론도 없이 임원회에서 장례문화개선 청원건은 예전예식서 개정 시 처리하기로 헌의위원회에 통보하였다는 총대 보고였다. 총회 임원회가 너무 쉽게 다룬 같아 매우 안타깝다. 총회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장례문화가 성경적인가?’ 에 대한 답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개혁교회 질서 해석에 의하면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고 가족적인 일이라고 했다. 사람은 죽음으로 그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교회는 죽은 자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무도 받지 않았다. 장례에 책임이 교회에 있지 않고, 가족에게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교회장(), 노회장, 총회장이 성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장례에 예배가 많다. 임종, 입관, 발인, 하관, 하물며 천국환송예배 그리고 추도(추모) 예배도 있다. 고신총회 헌법규칙 제 7(장례식)성경을 낭독하고 설교를 하고라고 함으로 자연스럽게 예배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예배가 아닌 목사가 적당한 성경을 읽고 설교 대신에 부활의 소망과 감사와 위로의 말을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친다.

돌트 교회정치(1618)는 장례예배를 가지지 않으나 교회와 목사는 슬퍼하는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합당한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다. 예배가 아니기 때문에 축도도 없다. 목사가 장례를 집행하지만 예배가 아닌 단지 가족과 친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인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정사진과 헌화이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국화로 장식하고 위폐를 세운 제단 한 쪽에 유족은 줄지어 서고 문상객은 제단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묵념 또는 기도와 헌화를 하고 돌아서서 유족을 위로한다. 절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불신자들의 장례 예식과 다를 바가 없다.

성경에는 죽은 자 앞에 묵념이나 기도가 없을 뿐 아니라 헌화도 말씀하지 않았다. 다만 슬픔을 당한 유족들과 함께 슬퍼하며 위로했을 뿐이다. 허 박사께서도 이 점에 대해서 간곡하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영정사진이나 꽃 한 송이도 없었다. 조문객은 슬픔을 당한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 전부였다. 입관도 하관도 예배가 아닌 가족들만 참여하였다.

오늘의 교회장례문화가 비성경적이므로 과감하게 개혁 할 것을 촉구한다. 이미 토착화가 오래된 교회장례문화를 개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총회가 심사숙고 연구하고 토론해서 결의하고 교회가 따를 때 가능하다고 본다. 총회의 결의가 없고서는 개체 교회가 스스로 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교회장례문화가 천주교나 불교의 미신에서 벗어나 성도의 죽음과 장례가 부활의 소망이 되는 축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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