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이후 우석병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전신)에서 원목생활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집이 있는 가회동까지는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근무하던 3년간을 도보로 출퇴근을 했다. 아침 출근시간마다 1시간씩 걸으며 병원을 가던 습관이 자리 잡기까지는 내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 크나큰 축복이요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중에는 몇 해를 병석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며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 걷고자하는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 작은 바람을 들으며 원목으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걸을 수 있는 일상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다.

병원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픈 환자들을 뒤로 한 채 흡사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 문을 나서는 사람처럼 얼마만큼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막 병원을 빠져나올 무렵이었다. 긴박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한 대가 병원 정문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응급실로 유턴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침 담당여의사 민 선생이 난처하고도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맹장이 터진 복막염 환자예요.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 중인 것을 경찰이 데려왔대요. 빨리 수술하면 살 수 있을텐데...” 당시에는 수술에 필요한 혈액 비용을 반드시 선불로 받는 것이 모든 병원이 관례였다. 혈액 비용을 지불할 길이 없는 환자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난처하고도 급박한 상황에 때마침 내가 제 발로 응급실로 찾아 들어온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할지 묻는 담당의사의 눈빛을 나는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피 값을 대신 선납해주고 싶었지만, 주머니가 비어있어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민선생은 나의 혈액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B형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선생의 두 눈이 커졌다.

이 또한 하나님의 더 큰 뜻이며 사랑이었을까? 마침 실려온 행려환자가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장 그 자리에서 팔을 걷어 올려 수술에 쓸 380cc의 피를 뽑았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한 첫 번째 헌혈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체험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로부터 15일이 지나 나에게 수혈을 받은 22살의 젊은이가 퇴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내 피가 이 젊은이의 몸속에 흐르고 있겠구나. 그렇다면 그의 생명이 나와 함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 젊은이를 위해 헌혈을 한 사건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피를 모두 흘리신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나의 삶에 큰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하나님 왜 저에게만 이런 감동을 주십니까. 이 감동을 온 국민과 함께 공유 할 수가 없을까요?” 이러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삼각산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 그럼 네가 이 운동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활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은 화살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분은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당신의 손으로 나를 구부리시는 것이리라. 기도를 통해 생명나눔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쓰여질 것임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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