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이미 여러 교단에서 이를 기념하여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우리 고신교회도 의미 있는 행사들을 여럿 하였다. 특히 지난 424일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95개조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 전반을 살펴 뽑은 14개 분야, 9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개혁자들의 후예답고 고신 교회다운 성찰과 고민, 그리고 소망이 담겨 있는 좋은 선언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언문에 담긴 내용들에 대한 신학적 검증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언문의 의미를 폄훼하거나 비난할 목적이 아니라 고치고 다듬어 보석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고신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소망한다.

그 일환으로 사소하고 작게 보이지만 반드시 점검해야 될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95개조 선언문이라는 제목에 아쉬움이 남는다. 총회는 상설기구가 아니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시작함으로 총회는 개회된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가 마지막 폐회를 선언하는 순간 총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짐작하건대 고신총회는 고신교단 혹은 고신교회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 듯하다. 사소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용어 하나에도 개혁자들의 후예다움이 묻어나야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이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자칫 행사가 행사로 끝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참다운 기념이 되려면 열매와 영향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성찬을 통해서 기념한다. 성찬을 행할 때마다 성령님께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주는 유익을 누리게 만든다. 기념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성찬은 이렇게 기념함으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효력을 발휘한다. 종교개혁을 기념하자는 것도 이와 같은 효력이 나타나야 한다. 만약 종교개혁 기념행사를 수 없이 많이 했는데 실제로 아무런 효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일회성 행사이다. 우리 고신교회가 당대교회를 향하여 95개의 질의서를 던진 루터의 행적을 따라 95개의 개혁과제를 발표했다. 이 일이 일회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그 개혁과제가 진정 성경적인 내용인지 심도 있는 논의와 철저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도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더불어 500년 전 교회개혁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직분개혁이었음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28:19~20).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사역을 통하여 교회(제자로 삼아)를 세우라고 하셨다. 그 명령을 받은 사도들은 가르치는 사역과 세례를 베푸는 사역을 감당할 장로들을 세웠다(14:23, 1:5). 곧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의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일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회는 목사와 장로를 세울 때에 분명한 성경의 기준을 갖고 행해야 한다. 목사고시가 통과의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대학원을 무사히 마치고 강도사 과정을 지났으니 목사의 소양을 가졌으니 그로 만족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노회의 사명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관계 때문에 자격 없는 사람을 목사로 세워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목사에게 수많은 영혼들의 안녕이 달려 있지 않은가! 장로도 마찬가지다. 장로직의 기원과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장로로 세울 수 있는가? 장로들의 치리는 모든 성도들의 삶의 전 영역에 대한 보살핌과 돌봄으로 나타나야 한다. 장로의 일차적 직무는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는 것이다.

필자의 고시부 경험에 의하면 장로 피택자들의 직분 이해는 비참할 정도였다. “항존직이라는 용어 이해가 대표적이다. 항존직이라는 용어를 한 개인이 직분을 받으면 그 직분을 평생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러한 의미로 이해하는 목사들도 많다. 이는 무지를 넘어 불행이다. 항존직이란 말은 교회가 존재 하는 한 항상 있어야 될 직분이라는 의미다. 또한 장로들의 회란 용어 이해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장로들의 회는 당회요 노회다. 그런데 어떻게 이 공적 장로회인 당회와 노회를 두고 치리 장로들만 모인 장로연합회가 가능한가? 성경적인 장로회 연합회는 당회와 노회다. 우리가 누구인가! 개혁자들의 후예요 고신의 후예이지 않은가! 한국의 어떤 교회도 갖지 못한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그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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