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십자가를 걸어두면 안되나요?

최근에 모 교단 총회에서 예배당에 십자가를 부착하는 것을 금했다고 하는데요. 예배당 밖에,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를 다는 것은 괜찮고 예배당 안은 왜 안 된다는 것입니까? 예배당 안에 상징을 가질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떤 형태의 건물과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교인들이 십자가를 우상 숭배할 수 있다는 염려라면 믿지 않는 이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미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입니까? 미국에서는 강대상에 성조기를 세워놓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세상 상징을 강단에 끌어오는 것을 금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 어떤 상징을 가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예배당에 십자가를 부착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바람직한가를 묻기 전에 그게 성경적으로 옳은 것이냐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십자가를 사용하지 말라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성경 이후의 시대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부착하는 것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십시오. 성전 안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고, 성전 벽에는 그룹, 즉 천사의 모습들이며 식물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성전이 사라졌으니 그 모든 형상들이 사라졌을까요?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자체의 건물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상징물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신약교회는 죽은 형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형상,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새긴 교회였습니다.

중세교회는 다양한 형상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교신앙을 포섭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성상, 성물이 신앙을 고양시키기 위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시대에 성상파괴운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개신교회가 로마천주교회의 성상숭배를 정죄하는데요. 중세에는 서방의 로마교회가 동방정교회를 향해 성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호통을 쳐 대었습니다. 서방교회가 동방교회를 정죄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콘(Icon)이었습니다. 이콘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형상입니다. 문제는 그 이콘에 성모 마리아며, 예수님, 심지어는 성부 하나님마저 형상화하여 담았습니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그 이콘을 정죄했습니다. 그 이콘이 제2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동방교회의 예배를 참석해보면 그들의 예배당에 온갖 종류의 이콘이 걸려 있고, 그 이콘에 입맞춤을 하고, 손을 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콘을 정죄하던 서방교회는 이후에 온갖 종류의 성상을 만들어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가 가졌던 상징물들을 대부분 제거했습니다. 2차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모슬렘들이 성당의 모자이크를 다 회칠했듯이 종교개혁도 동일한 길을 걸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중세시대의 찬란한 예술작품들을 다 파괴했습니다.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열심 때문입니다. 그나마 겨우 남겨둔 것이 스테인드글래스 정도입니다. 개혁한 교회는 예배당 안의 대부분의 상징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안에 상징물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안에 자리하는 회중이 살아있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놀라운 상징물입니다. 예배당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성구의 배치에 신학을 담아야 합니다.


강단에 국기를 세운 것을 언급하셨는데요. 강단에 태극기나 성조기를 세우는 것은 금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징물이 강단에 올라가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교회는 민족주의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의 보수적인 교회는 국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조국과 민족을 사랑해야 하겠지만 조국과 민족의 이익을 배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말입니다. 교회는 나라와 민족의 죄를 지적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 종교 상징물을 무한정 늘여가는 것보다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최소화한 후에는 그 상징물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상징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경우처럼 승리의 상징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물론, 중세교회는 십자가를 고상(苦像)으로 만들어 금욕을 통해 구원에 이르려는 신심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요즘에도 십자가가 우상화될 수 있을까요? 로마천주교인들은 아직까지도 십자가를 부적처럼 사용할 여지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십자가를 악세서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부적이나 악세서리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우상입니다. 단군상을 파괴하는 노력 이상으로 우리 마음속의 탐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에 미혹되기 쉽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 마음에 이미 우상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상징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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