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물건이나 상황을 지칭하는 단어를 계속해서 말하다보면 그것을 왜 이렇게 부르게 되었지? 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어. 오늘, 오늘, 오늘 — 이라고 서너 번만 되풀이 해 봐. 좀 우습지?^^ 왜 오늘을 오늘이라고 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그에 적당한 단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 단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물건이나 상황 또한 삶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반복되고 있는 듯해. 그래서 이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것에 대한 단어가 익숙해지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기도 하지.


주의력결핍장애(ADHD)라는 단어 들어보았지? 주의력 저하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건데 비행이나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해. 주의력결핍장애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의 자녀가 산만하거나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더라도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어머니 어릴 적 초등학교생활을 떠올려보면 주의력결핍장애를 의심할 만한 남학생들이 아주 많았어. 그런 남학생들이 고학년이 되니 어머니 기억에는 거의 모두 정상적이었고. 그런데 요즘에는 ADHD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니 자녀가 조금 산만하거나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면 ADHD가 아닌가 걱정부터 하는 것을 자주 보기도 하고 어떤 부모님들은 약을 먹여야하는 건 아닐까 고민까지 하기도해.


단어가 익숙해지는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이렇게 과잉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요즘 어떤 단어에 대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이 있어 그것을 말해주려고 해.


바로 ‘동성애’야. 동성애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된 쟁점이 아닐 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가 되니까 고민하는 청소년이 많이 생긴듯해. 청소년기는 이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동성 친구간의 친밀한 우정이 쌓이는 시기인데 동성친구간의 친밀감을 동성애로 착각한다는 거야. “어! 혹시 나도 동성애자?” 라고 말이야!! 어떤 학생들은 이성에도 관심 있고 동성친구도 좋으니까, “혹시 나는 양성애자인가?”라고 의문을 품고. 어머니 청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요즘 청소년들이 이성에 대한 관심과 동성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어머니 어린 시절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동성애라는 단어가 지금은 익숙한 단어이다 보니 자신에게 적용하는 거지.


주위에서 이런 친구들을 본 적 없니? 어머니는 몇 명의 학생들로부터 자신이 동성애 혹은 양성애자인 것 같다는 고민을 들은 적이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을 그 단어에 적용하다보니 자신이 그 단어에 갇히는 거라고 생각해. 차근차근 이야기하다보면 자신이 동성애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만약에 그 학생이 또래 친구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했거나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니? 자신이 자기를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로 만들었을 수도 있어.


인준아, 너는 수많은 단어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한 단어 중에는 익숙한 단어도 있고 생소한 단어도 있을 거야. 너 또래 청소년들에게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네가 전혀 반응하지 않아야하는 단어도 있고, 너에게 생소한 단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반응해야하는 단어도 있어. 그 중에 절대 반응해서는 안 될 단어 중 하나가 동성애야.


동성친구간의 우정을 익숙해진 단어인 동성애로 연결시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해.


그렇다면 기독교인인 너는 어떤 단어에 익숙해야 하겠니? 생각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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