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들려준, ‘기독교와 기독교인’.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어떤 부분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지 않기로 한 완악한 모습은 어머니의 합리화도 아니고, 어머니의 결단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너에게 이해받기 위함도 아닌, 기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심히 왜곡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거!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말하기에는 모순투성이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원하는 여자 집사님이 계신데, 여러 가지 이유로 성도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종종 있던 분이야. 그 집사님이 자라온 환경이나 학벌과 능력 등이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무시하는 언행을 보이다가 그의 남편이 판사라고 하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뀐다는 거야. 그래서 강의할 때면 시작 전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도 말한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으니까 남편을 통해 자신을 세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 이런 부분에서 늘 남편에게 감사하며 산다고 하셨어.


여러 면에서 어머니가 닮아야할 부분이 많고, 배울게 많은 분이라 이 집사님의 말을 늘 경청하지만 위와 같은 말씀을 들었을 때 동의하기가 조금은 힘들었어. 왜냐하면 성경말씀에는 우리 모두는 질그릇이고 큰 능력은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있는 보배, 즉 구원의 복음에 있다고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7절)


질그릇은 아무리 꾸미고 색칠한다고 해도 질그릇에 불과해. 기독교인의 능력은 질그릇을 꾸민다고(학벌, 배경, 직업, 그리고 집사님이 말한 남편의 직업 등, 그리고 때로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조차도)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질그릇에 담긴 보배 때문이야. 많은 사람들이, 비록 기독교인들조차 어떤 학벌이나 배경, 직업, 윤리적인 삶의 태도 등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능력이 될 수 없는 거지. 잘 꾸며 놓은 질그릇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데, 잘못된 태도 중에 조금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질그릇을 꾸미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거야.


인준아, 기독교인은 질그릇에 불과하고 기독교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야.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에 명령한 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하고,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너도 거룩하라고 하는 명령에 따라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거룩해야 하지만 완전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질그릇일 수밖에 없어.


네가 고민하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인 ‘사랑과 겸손’이 질그릇인 기독교인들에게 담겨있기 때문에 질그릇을 보게 되면 절망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거야. 질그릇은 질그릇으로 보아야하고, 보배는 보배로 보아야해. 아무리 잘 꾸며진 질그릇, 다시 말해 네가 보기에 ‘사랑과 겸손’을 정말로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인이라 해도 그 질그릇은 네가 주목해야 할 대상이 아니야.


질그릇에 불과한 기독교인, 특히 어머니의 완악함과 ‘사랑과 겸손’의 기독교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질그릇과 보배의 관계’라는 사실이 너의 고민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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